라이의 "삶의 片鱗 "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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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. 내가 다른 누구보다도 우수하고, 누구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. 누적 인사평가가 최우수 등급이었단 말이다. 억울하고 울컥하고. 임신과 육아를 지나오면서 남들보다 너덜너덜해지고 파란만장해진 커리어가 더 없이 서러웠다. 억울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. 과연 무엇이 억울한 것인가. 행동할 것인가. 나는 생각했다.

순간 영화 블랙스완의 니나가 떠올랐다. 오디션 때 자신의 약점을 명확히 꼬집히고, 결과를 뒤집기 위해 예술감독인 리로이를 찾아가는 니나 말이다. 니나는 더 없이 설득력 없게 '잘 할 수 있어요. 다 외웠어요.'라고 말하고, 리로이가 '이미 베로니카로 결정했다'라고 말하자 바로 문을 열고 나선다. 하지만 그런 니나를 잡는 리로이. '겨우 그  정도만 하려고 그러고 왔냐' 라는 말. 그렇다. 니나의 행색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. 그녀는 남몰래 들어간 프리마발레리나 베쓰의 분장실에서 립스틱과, 줄과, 액세서리를 훔친다. 프리마 발레리나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얻어보려는 그 절실함. 그 절실함의 결과물로 얻어낸 진한 립스틱- 평소에는 전혀 바르지 않는-을 바르고 예술감독을 찾아갔었던 것이다. 니나가 설득은 아주 소심하게 하고 또 곧바로 포기하고 문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, 리로이는 거기서 그녀의 열망을 봤을 것이다. 자신의 추행에 가까운 행동(사실은 그냥 추행)에, 빠르게 반격을 가하는 니나를 보고 리로이는 그녀에게서 마침내 추출해내고야 말 흑조의 기질을 보았을 것이다. 그리고 그것을 실제 무대로 이끌어 내기 위해 니나를 닦아세웠고, 니나는 스트레스를 받아 자아가 분열되어 갈 망정 그 열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.

그리고 다시 생각했다. 나는 립스틱을 바르고 사업부장실 문을 열만큼 용기가 있는가. 아니, 그 만큼 원하는가. 그것은 '열망'이라고 말할 만한 것인가. 아니다. 어떤 논리를 세워보고, 질문을 바꾸어 나에게 물어봐도. 내 열망이 무엇인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. 열망이 없는자는 억울할 것도 없다. 좌절할 것도 없다.

나는 그저 뚜벅 뚜벅. 걸어갈 뿐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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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1/03/11 20:52 2011/03/11 20:52
분류없음 2011/03/11 20:52 by 라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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